랠리를 떠받친 게 실적이 아니라 빚이었다면
지난 2년간 전 세계 증시를 이끌어온 AI 랠리에 처음으로 균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가 발단이다. BIS는 AI 기업들의 차입 규모가 2010년 약 220억 달러(약 29.6조 원)에서 2025년 1조 달러(약 1,345조 원) 이상으로, 15년 만에 45배 넘게 불어났다고 지적했다. 전체 사모신용 시장에서 기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2%에서 44%로 두 배 뛰었다. BIS는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기업 대차대조표 밖에 있거나 기업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구조"라며 구조적 불투명성을 문제 삼았고, 아직 뚜렷한 스트레스 징후는 없지만 채권금리가 계속 오르면 시장 회복력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요컨대 그동안의 AI 붐이 실제 수익이 아니라 레버리지로 쌓아올린 탑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리더들이 쪼개졌다, "늦추자" vs "그럴 일 없다"
이 와중에 AI 업계를 이끄는 인물들 사이에서 정면충돌이 벌어졌다. 앤스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AI 선두 기업들이 개발 속도를 관리해야 한다"며 업계 전반의 속도조절을 촉구했고, 일론 머스크와 샘 알트먼도 여기에 어느 정도 동의를 표했다. 반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최근 올인 서밋(All-In Summit)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던 황은 "당신 말이 맞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겠습니다(You're right. We're not going to let that happen, sir)"라고 답했고, 트럼프 역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건 사기다(It's a hoax)"라며 속도조절론 자체를 음모로 규정했다. 마크 저커버그도 "업계 전체의 일괄적인 속도조절은 필요 없다. 시장 경쟁이 알아서 기업들을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며 황 쪽에 힘을 실었다. AI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것도 대통령까지 끼어들어 갈라선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다.

시장은 이미 먼저 움직였다
논쟁이 이어지는 사이 시장은 먼저 반응했다. 아모데이의 속도조절 발언 이후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커지면서 나스닥100지수가 0.8% 하락했고, 특히 메모리·반도체 종목이 큰 압박을 받았다. AI 개발이 둔화되면 관련 설비투자도 함께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고유가와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서 AI 투자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벌어진 사우디 송유관 드론 공격으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107달러를 돌파하며, 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는 모양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이 흐름은 남 얘기가 아니다. 글로벌 AI 관련주 투매가 이어지면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커지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유가 급등은 곧바로 부담으로 작용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대장주들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AI가 거품이냐 아니냐"라는 해묵은 질문이 아니라, "그 거품을 떠받치고 있는 빚더미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훨씬 현실적인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모데이와 황, 두 사람 중 누구 말이 맞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시장은 이미 답을 재는 눈치다. 다음 실적 발표 시즌에 AI 관련 기업들이 실제 이익으로 이 부채를 감당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지, 아니면 BIS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지가 하반기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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